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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제자들은 키워 봐야 소용없다던 그 선생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그나마' 생긴지 얼마 안 되는 여자 사립 고등학교였다. 선생님들은 대부분 젊은 고학력자에 의욕이 넘치는 분들이었고, 군데군데 학생운동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분들도 섞여 있었는데, 그런 학교 내의 분위기와 교육열이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결과적으로 회상할 수 있다.

특히 역사선생님 두 분과 윤리선생님 한 분은, '아무리 어른이 얘기하더라도 항상 마음속으로나마 문제제기하고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강조를 하신 분들이라, 학생들도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두발자유가 꼭 좋은 것인가, 신청하면 월 단위로 돈을 내고 먹을 수 있는 유료급식이 다른 학생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 사실상 전쟁 대비 훈련이었다는 교련 수업의 긍정적 효과는 무엇인가, 그런 것에 대해 항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문화였다.

물론 선생님들은 그 부작용을 함께 감당해야 했다. 즉, 뭔 말을 해도 학생들이 '선생님 말씀이니까'라며 곱게 있는 그대로 받아쳐듣지 못하고 '그건 왜 그런 건데요', '그거는 아니지요', 라는 식으로 나오는 상황 말이다. 당연히도,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 와중에 꼭 가르치면 쪽쪽 흡수해서 시도때도 없이 배움을 실천하려는 학생들이 있는 법이니까.

 

 

그 사태가 일어난 것은, 96년, 그러니까 내가 고 2때였는데, 당시 고3 입시지도도 겸하고 계신, 우리 학교에서는 조금 나이대가 있는 편인 수리탐구영역 선생님의 수업 중의 일이었다. 그 즈음 입시지도로 많은 피로과 스트레스에 시달렸기에, 우리가 조금만 '잡담 좀 하다가 수업 하시죠'라고 보채도 금새 진도에서 빠져나와 '고3 언니들이 어떤 지원을 선호하고 있고, 대학은 이번에 어디가 어떻더라'라는 얘기를 해 주시는 편이었다. 그 와중에 '똑같이 서울대를 쓸 성적이 되도, 간호대는 되지만 농대는 안 가려고 하는게, (그 때 당시) 농대는 중간에 수원으로 가야 하거든. 간호대는 대학로로 가고. 게다가 시집 가려면 간호대가 나아,' 뭐 이런 말을 무슨 의미인지 알아먹지도 못하고 들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유독 지쳐서 들어온 선생님은 우리가 보채지도 않았는데 분필을 내려놓고는 푸념을 시작했했다.

'내가 고3 담임도 아닌데 도대체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게 왜 진작 좀 안전하게 성적을 올려놓지 못하니. 고2인 너네들은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겨울방학에 잘 해놓으면, 나중에 똥줄이 덜 탈 거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하루에도 몇 번씩 가고 싶은 과가 바뀌는 거니' 어쩌고 저쩌고...

사실 진로에 대해 고민할 틈도 없고 그렇게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던 학생들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건 황당한 노릇이지만, 교사도 사람이고 힘들땐 힘든 거니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냥 잠자코 듣고 있었다. 무엇보다 항상 쎈척하는 선생님들의 약해빠진 모습을 보는 건 색다르고 즐거웠다.

 

그 와중에 그 수학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게 사태의 발단이었다.

'사실, 여자 제자들은 키워 봐야 소용없다. 졸업하고 거의 다 시집 가고 땡이거든. 우리나라 여학교들의 동창회가 왜 안 되는지 아냐? 다들 전공이니 진로니 지금 목을 매지? 나중에 그거 살려 일 하는 애들은 몇 명 안되. 전부 집에서 주부 할 거면서 지금 왜 그리들 아등바등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 자리에서 몇몇 학생들이 '쌤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맞다, 맞다. 쌤, 그라믄 우리가 나중에 다 애엄마나 된다 이 소린교?', '말도 안됩니더, 제자들 기 죽이는 것도 아이고...' 뭐 이렇게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반발이 있으면 보통 사과를 하거나 '그런 경우도 있단 소리다, 내가 피곤해서 말이 지나쳤네, 절대 안 그렇지, 암.' 하고 무마하고 넘어갈만도 한데 선생님은 단호했다. '내가 교사생활 몇 년을 했는데. 나중에 직장생활 하거나 사회활동 하고, 찾아오고.. 그런 건 전부 남자 제자들이다!'라고 우기기 시작.. 결국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교사가 제자의 진로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성차별적인 편견까지 내비쳤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멋드러진 글 아래, 엄마가 반상회장 해서 이런 거 많이 그려봤다는 학생이 그려놓은, 서명을 할 수 있는 리스트까지 붙여서 학교 안을 돌기 시작했다. 그런 발언을 규탄하고 교장선생님이 되었든 어디가 되었든 학교 내에서 이 것을 문제제기 해서 징계를 하거나 하지 않으면 이걸 학부모회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학생들 때문에 학주부터 교감까지 모두 비상 대책 회의까지 했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의 발언은 고3들에게까지 전파되었고, 그 선생님으로부터 입시지도를 받는 3학년들 중 일부가 상담 거부를 선언하면서 일이 더 심각해졌다. 

결국 해당 선생님은 그 반에 가서 사과를 하고 아침 조례 방송에서 다시 한 번 전교생에게 자신이 말이 심했고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고 선생님도 실수는 하는 법이지만 미안하다는 둥, 뭐 그렇게 해서 상황이 일단락 되었다.

 

 

선생님은 아직 학교에 남아 계시다. 3년에 한 번 정도 부산까지 내려가서 학교를 찾아가는데, 그 때마다 나를 알아보시고 '어이~ 서울대! 잘 지내지?'라고 저기 구석 복사기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시기도 한다.(-_- 이름을 좀 외우라고, 이름을. 어느 대 갔는지만 외우는 이유가 뭡니까..)

나는 아이러브스쿨때도 고 2때 잠깐 당했던 따돌림에 대한 서운함이 남아있어서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것 보다 당시 독특하기 짝이 없었던 선생님들이 그리워서 학교 홈페이지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동창들 소식이 좀 궁금하기도 했고, 아무래도 나 혼자 찾아가면 너무 관심이 집중되니까 친했던 동창들 몇몇을 의기투합하게 해서 스승의 날 즈음에 가거나 하면 좋을 것 같아서도 있었다.

그런데, 홈페이지 동문 게시판을 들어가본 결과는 별 성과가 없었다. 아쉽게도 동창들은 그다지 동문회에 관심이 없는지 동문 게시판은 썰렁하고 몇 개 없는 게시글 중에서는 공지사항과 친구들 안부를 묻는 내 글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산에 남아있는 친구들과의 연락을 시도해 보았는데 거진 10년이 흐른지라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나마 나와 제일 오래 연락했던 친구는 최근 서울 인근으로 이사와서 신혼집을 차진지라 그녀를 통해 친구들의 안부를 묻게 되었다.

 

조금은 놀랐고 신기했던 것은, 그 때 그 선생님의 말이 거진 사실로 드러났던 것이다.

동창들 중에서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동창들의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았다. 90% 중에서 절반 이상은 아예 대학을 졸업한(또는 그만둔) 후에 단 한순간도 취직을 한 적이 없었다. 졸업 직전, 또는 직후 결혼을 했고, 곧바로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취직을 하긴 했던 경우도 으레 약대나 간호대 등을 나와서 전문직 분야에 종사하면서 2년에서 길어봐야 5년 정도 일을 한 후에는 결혼 또는 출산과 동시에 그냥 주부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일을 하고 있는 10% 중의 대부분은, 그 당시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으로 진학한, 즉 '집을 벗어난' 동창들이었다.

이런 결과가 어떻게 도래했는지, 약간 망연자실하고 황당하다가, 그 때 당시 선생님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며 '저는 제가 가고 싶은 진로가 있거든요! 그 길로 갈 거거든요!'라고 화를 내던 모습들이 떠오르고, 그렇지만 '남동생이 있어서, 성적은 되지만 서울에는 못 보낸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일하는 엄마를 둔 학생이 손으로 꼽는 지방 특유의 문화, 그리고 외벌이를 해도 큰 어려움이 없는 물가나 집값 같은 것도 종합적으로 떠오르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예, 잡써칭을 한 적이 없지, 몇 명은. 대학 3학년 넘어서 결혼할 남자 있고 양가에서 마 무난히 생각하면 그냥 미래 정해진 거였거든. 나랑 같은 학교 다닌 애들도 거진 그랬어. 내가 그래도 우기고 취직까지 했다가 이렇게 결혼 늦게 한 이유 중에 하나는, 너랑 계속 연락하고 지내서다. 니가 하도 내가 늘 보고 듣는 거랑은 다른 세상같은 얘기를 해 주니까, 내 주변 사람들이 다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산다고 이게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물론, 결과적으로 그 선생님의 말이 들어맞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선생님의 그 말은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자 제자들이 대학 잘 보내놔도 시집밖에 안 가고 결국 주부 되어서 아무 소용 없더라는 것은, 결과만 가지고 당사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는, 형편이나 편견 때문에 남동생이나 오빠에게 밀린 서러움과, 여자로서 직장 구하기 더 어려운 현실과, 그런 과정에서도 가진 의욕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가족과 배우자와 주변 환경 등등이 있다. 구조적인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걸 싸그리 무시하고 '너네는 지금은 이렇게 아등바등 굴지만 나중엔 다 인생 편하게 살려고 남편이나 잘 만날 생각을 한다'고 몰아붙이는 건 전형적인 성차별이고 문제의 인과관계를 호도하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 후배들은 그 때의 우리와는 또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부산의 경기도 외벌이보단 맞벌이가 더 필요할 것이며, 외동이 많아서 남자 형제와 비교당하거나 밀리는 일도 드물 것이고, 서비스직종에서는 여성 채용 선호도가 뚜렷하고 기타 등등..

하지만 종종 느끼는 건데, 이런 결과를 접하게 되면 참 외롭다. 수많은 우리들이 수많은 각자의 사정과 철학과 고민 속에서 택한 길들이 있고 그 길 넘어 서로를 마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참 외롭다. 미즈넷에 들어가고 키보드나 또드락대며 투덜대고.. 이게 수많은 갈림길을 지날 때 마다 반복되고, 그리고 다시 외롭고.

 

 

참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