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강동구 산책

나와 남자친구씨는 서울 여기저기 산책하기를 좋아하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좀 정신나간 수준의 산책인 경우가 많은가 보다. 그런데 서울은 정말 걷기 좋은 곳이 많다. 대충 구글 지도같은 거 보고 여기 어떨까, 찝은 다음에 무작정 근처까지 대중교통 타고 가서 걷는 것이다. 자주 간 곳은 코스도 짜여졌다.

 

그 중 베스트를 몇 가지 꼽으라고 하면,

- 서울숲~왕십리~황학동~종로

- 봉원사~안산~연희동~홍대

- 대학로~성균관대~와룡공원~성북동

- 이태원~남산 하이야트~남대문

 

기타 등등 여러 장소가 있는데, 실제로 딱 저렇게만 걷지 않고, 걷다 보면 좀 귀여운 골목길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서 헤매는, 모험을 즐기는 산책이다. 중간중간 물도 사 마시고,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 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총 시간은 짧으면 3시간, 길면 5시간까지도 간다. 최근에는 5시간이 넘어가면 허기와 피로 때문에 좋은 점보다 안좋은 점이 더 많아서 최대한 자제하곤 한다.

 

그런데 산책코스가 거의 강북에 집중되어 있어서(강남도 꽤 걸어보았지만, 서리풀공원이나 관악구 일대를 제외하곤 큰 흥미를 가질 수 없는 바둑판 구조..)  우리가 어딜 덜 가봤는지 곰곰 따져보니 강동구였다. 올림픽공원을 넘어서 가 본 곳이라곤 강동구 생태공원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트위터의 강풀씨가 항상 자랑하는 강동구의 주양쇼핑센터 안에 있는 왕돈까스집도 갈 겸 그쪽으로 가게 되었다.

 

코스 : 지하철 강동역~길동~주양쇼핑~고덕동(구 시영아파트-폐쇄)~배재고등학교~천호동

 

이 동네는 확실히 아파트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 많이 지어지는 그런 아파트가 아니라, 복도식의 옛스러운 아파트가 많고 그런 곳 답게 공간 활용도가 매우 낮으며 여기저기 주민들이 심어놓은 상추텃밭 같은 게 보여서 정겨웠다.

 

주양쇼핑의 돈까스는 양이 많고 맛도 평균 이상이다.

(물론, 지금까지 서울에서 먹은 제일 맛있는 돈까스는 구로구 중앙유통단지 지하에 있는 돈까스집! 온누리에 따위는 따라갈 수 없는 맛이다. 가격도 착하다)

주양돈까스는 리필이 된다고 들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양이었다. 다만 치킨돈까스는 소스 대신 겨자를 뿌려 먹으라고 하셨는데 나와 남자친구씨는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소스를 더 달라고 했고 나중에 밥도 더 달라고 해서 엄청나게 먹고 나왔다.

 

이것이 강동구의 물가... 맘에 들어! 참고로 저 호박 사왔다. (무거워서 남자친구씨가 개고생..)

 

가로수들이 하나같이 거대했는데, 옆에 오종종종 버섯 돋은 거 귀엽긔..

 

주양쇼핑센터에서 북쪽으로 더 가봐야 곧 한강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더 올라가는 게 의미가 없어보였지만 그래도 아파트촌이 맘에 들어 대충 걷다 보니까, 강동구 소방서가 나오고 그 뒤에 아파트가 보이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도 사는 흔적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궁금해서 슬그머니 그 근처까지 가 보았는데, 정말로 비어 있는 아파트였다. 공고문 같은 게 누렇게 붙어있는 걸 자세히 보니, 강동구 시영아파트였다고 한다. 지금은 재건축을 위해 입주자들이 모두 이주한 상태라고.

 

 

 

주변에는 사람이 1년 정도 없었던 덕분인지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개망초가 가득 피어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연출하고 있었다.

 

 

 

재건축 때 그래도 비교적 잡음 없이 해결이 된 편인지, 1층에 뻘겋게 철거라고 쓰여져 있거나 유리창이 깨져 있거나 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시영아파트 재건축 지역에서 나오는 길에 다시 강동구 소방서를 지나는데, 거기 아저씨들은 상추와 깻잎 같은 것만 키우는 게 아니라, 닭을 키우고 있었다..ㄷㄷㄷ 다 키우면...잡..수..시나?

 

저거 오골계?

 

대략 주양돈까스 먹은 시간까지 해서 3~4시간 걸렸고 중간에 더 쉬기는 않았다. 천호동에서 버스타고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서 맥주 한잔 하니 딱 좋더라.